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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인간이하> 후기. 왜 카타르 월드컵은 세계 평화에 기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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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의 <인간 이하>에 대한 독서 리뷰입니다.

※ 2023.02.14 일부 문법 수정

 

서론


왜 월드컵(지구촌 공동의 스포츠)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가

 

먼저 드는 의문점입니다.

왜 독서 리뷰에 갑자기 월드컵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아프리카의 오지부터, 북미, 남미, 심지어 월드컵

예선에서 떨어진 국가들까지, 월드컵의 열기로 들썩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2000년대 축구 이후, 이번 월드컵은 가장 이변이 많은 경기로

역대급이라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월드컵 뿐만이 아닙니다. 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안게임

등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스포츠 경기에는 막대한 규모의 자본과

거버넌스가 투입됩니다.

 

세계 사람 대다수가 즐길 수 있는,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은 우리가 벌이는 모든 종류의 갈등을 느슨하게 합니다.

 


<인간 이하>는 인간이 같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이 되다가 만 어떤 것, 짐승이나 해충에 가까운 것으로 떠올리는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전 역사를 보여주는 저서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악한 행동, 비윤리적인 행동이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추악한 행위들을 비춰보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인간적인 사유를 갖고도

다른 인간에 대해서 인간 이하라고 판정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외집단의 비인간화에 대한 정리를 마친 후 

다시 한번 서술하겠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다른 비유를 또 꺼내게 됩니다.

바로 영화 '아바타'에서 등장하는 판도라 행성의 주민들입니다.

 


 


아바타의 판도라 주민들은 같은 인간인가

인간 비스무리한 무언가인가

 

자, 다시 책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짝퉁 지구의 '짝퉁 인간'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지구와 똑같은 운명을 가지고, 똑같은 역사를 가졌으며

진화과정도 똑같은 외계 인간이 있습니다. 이들도 인간처럼 대우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저 '에일리언'이나 '스타트랙'처럼 외계인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필자가 글을 서술하는 12월 12일 시점에서, 며칠 후 제임스 카메론의

기대작 '아바타 2 물의길' 이 개봉합니다.

 

아, 물론 본 영화에 대한 홍보는 아닙니다.

 

다만 아바타의 설정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인간처럼 언어를 가졌고, 부족을 이루어 생활하며, 일종의 법과 도덕,

권력 구조도 있습니다. 이들은 애완동물을 기르기도 하며, 수렵채집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들은 판도라라는 유사 지구의 주민들입니다.

 

 

 

물론 다른 점은 이 '나비 족' 들은 인간보다 키가 1.5m 쯤은 더 크고, 피부가 온통

푸른색이라는 차이점은 있겠네요. 소통은 길다란 촉수같은 것으로

같은 종족은 물론 행성의 모든 동물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네요.

 

소통하는 능력에 있어서 이 종족은 인간보다 훨씬 진보된 종족인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물론, 고유의 음성언어도 존재하긴 합니다.

 

 

맹점은 이렇습니다. 나비 족들은 인간의 침략을 받고, 자원을 침략당하는

입장이어서 동정표가 생기긴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나비 족이 우주 전함을

타고 날아와서, 지구를 침략한다면요?

날아온 나비 족들을 우리들도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그럼 반대로, 판도라에 남아있는 나비 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주 전함을 타고 불쌍한 인간(호모 사피엔스) 족을 침범하러 간 동족들을

판도라에 남은 나비 족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윤리적으로 맹비난을 할까요, 잘했다고 찬성을 하면서 우주선을

몇개 더 태양계로 보내게 될까요. 호모 사피엔스 부족들을 보면서

'유사 나비족'인데 그들에게 인권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나비 족들의 심리학자나 이른바 '문화인류학자'처럼  문화 나비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 야만적인 호모 사피엔스 종족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나비(즉 인간) 본연의
고결한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생명과 자원을 공유할 줄 모르는 종족은
아무리 지능이 높다고 한들, 존중할 가치가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놀라운 점은 나비 족의 침략이 전례없는 신기한 일이 아니라

지구에서도 꽤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사례입니다.

 

 


왜 스페인 침략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개미처럼 학살할 수 있었는가

 

판도라 행성에 도착한 인류는 사실 절박합니다.

지구에서 쓸만한 자원이란 자원은 거의 소모했고,

돌아갈 시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로 찾은 지구와 유사한

행성은 환경도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고, 원자력보다

몇 십배 더 강력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 행성에 서식하는 동식물들과 지적 생명체를 해치게 된다는

압박감은 있지만, 뭐 어떻겠습니다. 지구의 남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외계의 괴생명체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비 족들에게 먼저 학교도 세우고,

교류도 하며, 자원을 캐는 곳에서 나가라고 충분한 시간도 줍니다.

 

 

반대로, 현실속의 인간은 16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더 무지막지한 일들을 벌입니다.

그것도 외계인도 아니고, 같은 행성에 사는 같은 종족에

대해서 말입니다.

 

<인간 이하>에서 500년 전 라틴 아메리카에 상륙한

스페인 사람들은 판도라 행성에 막 도착한 개발진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오히려 서구 문명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침략에 대한

유순한 알레고리로 영화를 기획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요.

 

더하여 스페인 사람들은 그다지 절박하지도 않습니다.

국가가 망하기 일보직전이 된 것도 아니고, 자원이 거의

소모된 것도 아니며, 긴 항해로 인해 식재료만 부족한 상황입니다.

 

원주민들은 인간 이외의 것으로 보고, 노예로 삼는 것은

사실상 당연히 여깁니다. 기록중에서는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신대륙의 노예를 2명씩 골라 잡으라는 이야기도 남아있습니다.

살인, 강간, 납치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나마 이들을 막는 것은

일부의 선교사들밖에 없었습니다.

침략자들은 원주민들을 일종의 짐승이나, 짐승보다 못한 

분노 섞인 시선으로 취급했습니다. 

 

 

17세기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영국 이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땅의 주인들이었던 인디언들은 무자비하게 내쫒고

흑인 노예들은 채찍으로 찍어 누르며 통제합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우리 종의 고도로 발달한 사회적, 협력적 본성을 고려할 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잔학 행위를 벌일 수 있을까?
그 답의 중요한 부분은 분명하다. 특정한 민족 집단을 인간이 아닌
동물로 그리기 위해 우리의 개념적 상상력의 힘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동료의식에 따라 억제되는 파괴적인 힘을 내보낼 수 있다.

-본문 189p

 


왜 아프리카 오지의 주민들은 자신만을
인간이라 칭하는가

 

본문에서 저자는 같은 인간을 짐승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보는 이유를

끈질기고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그중 하나는 '외집단 동질성 편향'입니다.

인간의 본성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진화가 함께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별하는 집단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면, 내집단과 외집단이

있습니다. 우리와 의견을 공유하고, 무언가를 함께하며, 공유하는 정신이 

있다면 내집단 입니다. 반대로 우리 사회의 외부에 있는 것은 외집단 입니다.

 

 

내집단 자체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외집단을 구분하면서 생기는데요.

내집단 안에서 개개인의 외견, 취향, 특성의 차이는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그러나 외집단은 각각의 집단의 차이가 엄밀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미국인의 경우,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을 생각만큼

잘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중동사람들은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아프리카 오지의 흑인들은 나라가 모두 다르지만 거의 구분을 못합니다. 

 

 

외집단과 다른 외집단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분을 잘 못하면서, 부정적인 개념이나 도덕성의 결함,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이 끼어듭니다.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문화 바깥의 행동들을

어색하게 보거나 신기하게 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접촉하는 

빈도 수가 그렇게 높지 않은 문화권은 약간 더 이상하거나, 희귀하게 봅니다.

신기한 문화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 것까지는 좋습니다만, 공포나 두려움을

갖는 것까지 이르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서구인들을 보면서, 모자를 쓰고 불을 뿜는 막대기를 갖고 다니는 코가 큰 종족들을

친근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악마나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본문에 의하면 아프리카 일부 부족에서 자신의 부족을 뜻하는 말에는

'인간'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보자면 자기네 부족의 테두리 밖에서

사는 민족들은 인간 비스무리한 것이나, 그 외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은 일부 부족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문화적 형태라고 합니다.

자기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행동 혹은 습관을 공유하는 것, 그들만이

인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공유하는 어떤 것이 인간을 해치지만

않으면 뭐든 좋습니다. 축제, 사냥, 여행, 성인식, 관습, 오락 등 어떤 것이든지요.

 

스포츠는 어떨까요? 적당히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기도 하고

규칙안에서는 서로를 때릴 수도 있고, 화합도 되는 그럴듯한 관습입니다.

 

결론으로

 

그래서 축구라는 공통된 무언가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간이고, 다른 필드에서 뛰고 있는 누군가도 인간이고,

구경하고 있는 사람도 인간입니다.

공통적인 규칙을 따르는 동안에 아마 일생동안 볼일이 없는 국가의

사람들이겠지만 그들은 한 집단이 됩니다.

 

 

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은 외집단이 되게 되냐구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 국가의 사람들도 월드컵을 보게되고, 그 공동체가

공통의 문화를 나누게 되며, 문화에서 문화로 연속적인 사슬이 그 사람을

감싸고 있으니까요.

 

 

국제적인 단위의 스포츠 행사는 그때문에 고귀합니다.

그들이 한 곳에서 공을 찰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을 둘러싼 공동체가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는 함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이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같이 필드를 뛰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우리를 진정 '같은 가족' 이라고 여기지 않을 지라도, 

같은 경기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다른 존재'라고 보는 의식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다른 민족이라는 점에서 오는 적대감과

미지에 대한 의식은 점차 희석됩니다.

 

 

어쩌면 판도라 행성의 나비 족들도 월드컵에 참가했다면

지하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 우리의 정신안에 이러한 편향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역사안에서 비인간화는 현 세대에서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 뒤늦게 알아차리고, 이미 사라져버린 민족들의

고통을 곱씹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저 <인간 이하>는 정말 인상적인

표지 디자인때문에 잡아들게 되었습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소중한

통찰과 비판이 담긴 이미지보다 인상적인 마음이 담긴, 추천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2022.12.12 <인간 이하> 후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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